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문단 편집) === 범행동기 === 피의자는 경찰에게 붙잡힌 직후 "표절이나 하고 말이야!"라고 외쳤고, 그 뒤 "쿄애니가 자신의 소설을 훔쳤기에 불을 질렀다."고 [[https://www.kyoto-np.co.jp/politics/article/20190718000190|주장했다.]] 7월 30일 교토 애니메이션 대변인은 피의자와 이름 및 주소지가 같은 인물이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주관하는 소설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했지만 낙선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해당 소설과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작품들 간에 유사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https://www.kyoto-np.co.jp/articles/-/9689|관련 기사]][* 그 이전 핫타 히데아키 사장이 인터뷰에서 피의자가 소설을 응모해 온 적이 없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으나 대변인에 따르면 해당 소설은 1차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사위원을 제외한 사장 포함 쿄애니 직원들에게는 해당 소설의 응모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므로 이 때문에 혼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https://www.sankei.com/west/news/190730/wst1907300033-n1.html|#]]] 다만 해당 소설의 공개는 [[저작권법]]상 저작자인 아오바 신지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https://www.j-cast.com/2019/07/31364031.html?p=all|#]][* 사실 저작권법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해당 소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테러나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은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 위한 경우가 많은데 범인이 쓴 소설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오히려 범인의 관심병을 충족시켜주고 테러의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당장 [[사가와 잇세이]] 등이 책을 써서 출판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일부 추종자들까지 만들어낸 사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일본 언론에서 피의자는 쿄애니에서 일했던 적이 없으며 업계에서 일한 경력도 없었다는 [[https://www.mbs.jp/news/sp/kansainews/20190718/GE000000000000028732.shtml|보도]]가 나왔다. 피의자의 이전 직업을 봐도 비상근직원, 우체국 직원 등이라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전혀 무관했다. 한편으로 핫타 히데아키 교토 애니메이션 사장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https://news.v.daum.net/v/20190718184603936|"(사건 전에도) 회사에 대한 항의가 일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았으며, 살인 협박 메일도 받아왔었다."]]고 토로했는데, 이 중에 아오바 신지의 것도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파일:5A1BE701-8588-4300-ADB4-9D33E3793648.jpg]] [[파일:7D3E5C6B-741F-4B6D-9B07-CC1680B6F304.jpg]] 피의자 아오바 신지의 어릴 적 사진 보도. 자세히 보면 어렸을 때의 노트도 보여주고 있다.[* 자기소개가 나오는데 생년월일과 취미(비디오 게임), 장래희망([[부자]])에 대해 적혀있다. 생년이 53년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1926년]]부터 시작된 연호인 [[쇼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쇼와 53년은 1978년인 셈이다.] 일부 일본 언론에서는 피의자의 가정사정이 막장이였던 게 정신이상자가 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신지의 친아버지는 원래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다가 자식이 다니던 유치원 교사와 불륜 후 재혼했고[* 키가 크고 잘 생긴 외모 탓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바람기도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지도 유전인지 키가 큰 편이다.] 이 사이에서 나온 게 아오바 신지다. 그 직후 전처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당시 생활고가 매우 심했던지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오바의 집은 쓰레기가 가득 차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으며,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또, 슈퍼나 편의점에서 과자 등을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생활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학교 때도 거의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가 집을 나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버지는 신지가 21살 때 택시기사 일 도중 사망 사고를 일으켜 손해배상금을 지불한 뒤 [[자살]]했다. 신지의 여동생은 다른 형제들이 독립한 뒤에도 아버지가 자살한 그 집에서 계속 살다가, 훗날 자살했다고 한다. [[https://www.dailyshincho.jp/article/2021/07170601/?all=1|#]] 이후 피의자는 점점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2012년까지 살았던 이바라키의 집합 주택에선 2012년 봄부터 집세를 체납했다고 하며, 밤중에 벽을 두드리고 괴성을 지르는 등 지속적으로 소음을 일으켜 관리인이 여러 차례 찾아갔음에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6월에 편의점에서 직원을 협박해 2만 1천엔을 훔치고 달아나다가 자수해 징역 3년 6월을 산 뒤 출소되었다. [[http://news1.kr/articles/?3674987|#]] 강도죄로 체포된 후에 관리인이 그의 방 안을 살펴봤을 때 벽, PC와 창문을 해머로 깨부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http://alonestar.egloos.com/7461944|#]] 이후 이사를 간 [[사이타마]]의 원룸에서도 이웃 주민들과 항상 갈등을 빚어오고 있었으며, 사건 발생 나흘 전에도 난데없이 이웃집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리고, 참다 못해 항의하러 온 이웃의 멱살을 잡으며 "죽여버리겠다", "나는 [[잃을 게 없다|잃을 것이 없다]]" 등의 폭언을 내뱉어 파출소에 신고되었다고 한다. 정신병원 입원경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직업 없이 [[히키코모리]]로 살아왔다고 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졸업한 뒤부터 계속 무직으로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비상근직원으로 취직한 적이 있고, 인재 파견회사에 등록된 적도 있으며, 우체국에 취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소한 뒤론 직업을 가졌다는 얘기가 없다.] 사이타마현에 있는 [[오미야역]]에서 대량 살인까지 계획한 것도 사건 이후 드러나게 된다. [[https://topics.smt.docomo.ne.jp/amp/article/kyodo_nor/nation/kyodo_nor-2023090501000900|#]] 도쿄대 범죄 심리학 교수는 이런 피의자의 정신상태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왜 사회가 자기를 평가해주지 않는가"라는 소외감이 "사회가 나쁘다", "세상이 나쁘다"라는 증오심으로 표출됐다고 분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